이인직 이완용 통역관
밴드 '양반들' 전범선, 가려졌던 친일 역사를 마주하다 🎙️
최근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친일파 후손'이라는 꼬리표입니다. 공인들의 과거사와 가족사가 대중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잦아진 가운데,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전범선이 자신의 뿌리에 관한 묵직한 고백을 털어놓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명인의 신변잡기가 아닌,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범선은 최근 유튜브 채널 '매불쇼'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창구를 통해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임을 인지하게 된 경위와 그 이후의 심경 변화를 가감 없이 밝혔습니다. 사실 그의 이러한 고백은 계획된 폭로가 아니라 우연한 대화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3.1절을 맞아 자신의 역사관을 담은 책을 출간한 시점과 맞물려, 과거 지인과의 편안한 대화에서 흘러나온 가족사 이야기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본인조차 기사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던 이 진솔한 고백은, 우리 역사를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던 역사학도, 음악에 인생을 걸다 🎸
전범선의 이력을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로스쿨에 합격하며 탄탄대로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습니다.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그는 미국 유학 시절, 한국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을 세운 호머 헐버트 박사의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귀국 후 헐버트 박사를 기리는 재단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역사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음악을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취미로 시작했던 음악은 점차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 되었고, 2016년 촛불 혁명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 퍼진 그의 노래들은 대중의 공감을 샀습니다. 결국 그는 로스쿨 입학을 포기하고 뮤지션이자 작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화려한 학벌 뒤에 숨겨진 개인의 선택은, 어쩌면 그가 마주했던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비장한 고백, 5대조 이인직의 실체 📜
전범선이 자신의 가계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역사학도로서 근대사를 깊게 파고들던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느 날 마음의 짐을 내려놓듯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너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고 역사 공부를 해라"라는 어머니의 말에는 수십 년간 감춰왔던 가족사의 고통이 서려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밝힌 그의 5대조는 다름 아닌 이인직이었습니다. 이인직은 한국 근대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혈의 누'를 집필한 인물로, 국어 교과서에서 개화파 지식인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전범선 역시 그를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만 알았을 뿐, 그 이면에 감춰진 친일 행적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참담했습니다. 이인직은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핵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 항목 | 상세 내용 |
|---|---|
| 인물명 | 이인직 (李人稙) |
| 주요 활동 | '혈의 누', '은세계' 등 신소설 집필 |
| 친일 행적 | 이완용의 비서 겸 통역관, 일진회 활동 |
| 전범선과의 관계 | 5대조 할아버지 (외가 쪽) |
| 가족 관계 특이사항 | 본처와 자식들을 버리고 일본 여성과 재혼 |
트라우마를 기록으로 승화시키는 용기 🖋️
이인직은 단순히 친일 활동을 한 것에 그치지 않고, 본처와 가족들을 버리고 일본인 여성과 재혼하며 가정을 완전히 해체했습니다. 전범선의 외가 쪽은 그가 버리고 떠난 '본처'의 후손인 셈입니다. 이 사실은 어머니에게 평생의 상처이자 트라우마였습니다. 혹여나 조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날까 봐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 속에서,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까지 어머니가 겪었을 심리적 고통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전범선은 어머니의 고백을 들은 후 매우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가문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그 오랜 세월 동안 홀로 비밀을 간직하며 고통받았을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이 교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공부하는 역사학을 통해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진실을 파헤치고, 스스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친일파 후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방식이자, 과거의 잘못을 직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의 행보는 단순한 과거 고백을 넘어, 우리 세대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뿌리를 성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