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 |
![]() |
배기성이 말한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은 완전히 끝난 소문이 아니라, 소속사가 8월 11일 일부 사실을 정정한 상태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확인되는 핵심은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가 맞고,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 이름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핵심 답 하영 측은 처음엔 사실무근이라 했지만, 다음 날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평의원 기록이 확인됐다고 정정했습니다. 대상 쟁점 인물은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입니다. 주의사항 명단 등재 사실과 역사적 최종 판정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기사마다 표현 강도가 다릅니다.
방송 속 가족사 발언이 불러온 파장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거진 하영의 증조부 관련 발언이 거센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에서 하영이 자신의 집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께서 한양 땅에 최초로 양의원을 세우셨고, 고종 황제를 직접 진료하셨던 분"이라며 4대째 이어져 온 의사 가문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럽게 언급했습니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과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 발언의 진위 여부와 대상 인물에 대한 추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특히 역사 강사 배기성이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사건은 단순한 예능 에피소드를 넘어 역사적 검증의 영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배기성 강사는 하영의 본명과 가족사 정보를 조합해 볼 때, 해당 인물이 일제강점기 의사였던 안상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역사 강사 배기성이 주목한 안상호의 행적
역사학계와 평소 강의를 통해 근현대사를 다뤄온 배기성 강사가 안상호라는 인물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으며, 당시 조선인 최초로 일본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학력 뒤에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복잡한 행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배기성 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안상호는 이완용이 이재명 의사의 저격으로 부상을 당했을 때 그를 직접 수술하여 살려낸 의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또한 1919년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쓰러졌을 당시 진료진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도 그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입니다. 배기성은 이러한 행적들을 나열하며 단순히 '의사'라는 직업적 관점이 아닌, 시대적 상황 속에서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친일 행적 논란의 결정적 증거들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당시 매체에 직접 보도된 그의 언행 때문입니다. 1918년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안상호는 스스로를 일컬어 "나는 일본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발언하며, 조선 옷을 입지 않고 일본식 생활 습관을 완벽히 체득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습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그가 아이들을 일본인 가정처럼 교육하고 있다는 점과 조선인들과의 교류를 의도적으로 멀리했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당시 일제가 강조하던 '내선일체'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로 선전되었으며, 친일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 활동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이완용이 고문을 맡고 있던 단체로, 일제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료들은 안상호의 삶이 단순한 전문직 종사자의 삶을 넘어섰음을 시사합니다.
| 분류 | 내용 |
|---|---|
| 인물 | 안상호 (하영의 증조부로 지목) |
| 주요 경력 |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 졸업, 한양 최초 양의원 개원 |
| 논란의 핵심 | 매일신보 내선일체 인터뷰, 대정실업친목회 활동, 이완용 수술 |
| 역사적 시각 | 친일 행적 의혹 vs 단순 전문직 활동의 해석 차이 |
하영의 사과와 대중의 싸늘한 시선 🌡️
논란이 확산되자 하영 측은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하게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배기성 강사를 비롯한 누리꾼들의 구체적인 자료 제시와 압박이 이어지자 결국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하영은 자필 사과문을 통해 "가족들로부터 전해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믿고 경솔하게 행동했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또한 본인이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기만 합니다. 배기성 강사는 하영이 33세의 성인이라는 점을 들어 "단순한 무지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역사를 방송에서 '가문의 자랑'으로 포장한 것은, 역사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안일했다는 지적입니다. "알고도 그랬다면 기만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역사적 무식함의 방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 여부를 둘러싼 공방
일각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으니 친일파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옹호론도 존재합니다. 역사학자 심용환 역시 성급한 친일파 규정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배기성 강사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주로 정계나 경제계 고위 인사 위주로 작성되었으며, 의사나 특정 기술직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누락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매불쇼' 등을 통해 이 의혹을 제기한 패널들은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인물을 친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친일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단순히 리스트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넘어, 그 사람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했는지를 묻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낳은 부메랑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조상은 독립운동가' 혹은 '우리 집안은 대대로 명문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밥상머리 교육으로 듣고 자랍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 확인 없는 왜곡된 신화일 경우, 훗날 자손에게 얼마나 큰 독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하영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줍니다.
역사 강사 배기성은 "조상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역사적 사실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영향력을 가진 공인이라면 자신의 가계사를 말할 때 더욱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전문직이니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식의 안일한 변명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수많은 선조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역사관 🇰🇷
결국 이번 배기성 강사와 하영의 논란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역사 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개인의 영광을 위해 역사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디지털 아카이브의 발달로 인해, 숨겨진 역사는 언제든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정체성입니다. 나의 뿌리를 자랑하기에 앞서 그 뿌리가 내린 토양이 어떤 역사를 머금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입니다. 이번 논란이 일회성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고, 우리 가족사를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돌아보는 성숙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는 누군가의 자랑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의 기록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이들이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근거 없는 가족사 자랑이 아닌 겸허한 역사적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
![]() |


